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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   송·원대 해저유물 발굴지 2012/2/18 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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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여 년 전의 수십억대 유물을 개밥그릇으로 사용한 보물섬 증도
1981년 6월 16일 국가사적 제274호로 지정된 신안해저유물 발굴지의 위치는 목포시에서 서·북 방향 직선거리로 약 34km, 압해읍 신안군청에서는 직선거리로 약 30km 지점인, 동경 126°05, 북위 35° 01로 서쪽으로는 망망대해 서해가 펼쳐져 있고, 북쪽으로는 신안군 임자도(荏子島)가 보이며, 도덕도라 부르는 아름다운 섬이 있는 곳으로 인근 어민들이 고기잡는 삶의 터전인 연안어장 바다이자, 간만의 차와 한류의 이동이 심하기로도 유명한 증도면 방축리 검산마을의 만들이라 불리는 곳이다.

만들 지명유래는 조선시대 말엽 백씨 성을 가진 집안에서 장사를 모시고 여성분이 산 아래로 손을 씻기 위해 내려갔다가 섬으로 이루어진 주변 바닷가에 고기떼가 가득 차 있는 모습을 보고 치마로 떠올린 이후에 고기떼가 가득 찼다는 의미로 찰 만자를 써서 만들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해저유물을 인양한 바다 위에 떠 있는 해적섬 도덕도와 대섬·호감섬·작은호감섬·부남섬 등이 바람과 파도를 막아주는 해중호수를 이루고 있어, 한때 500여 척의 어선들이 정박하면서 목넹기(항월포) 파시가 섯던 장소다.

이곳 검산 항에서 고깃배가 출항하여 민어·농어·병어·꽃게 등을 잡기 위해 바닷속에 그물을 치면 그물에 도자기가 걸려 나왔고, 옛날 고려장을 지낼 때 산 사람을 수장하면서 사용했던 그릇들이라 죽은 사람의 원귀가 끼어있다는 속설이 퍼지거나, 6·25 전쟁 당시 만들 앞바다에 떠 있는 내·외갈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사용했던 바다에 던져버린 도자기로 억울한 죽음에 대한 원혼이 서린 귀신 붙은 재수 없는 물건이라며, 혼 굿과 뱃고사를 지내주고 그물코에 걸리지 않도록 잘게 깨서 버렸었다.

예로부터 이러한 도자기가 어부들의 그물에 심심찮게 걸려 나오자 좋은 것은 가져다가 개밥그릇이나 요강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엿장수에게 엿으로 바꿔 먹기도 했다. 1975년 5월 신안군 지도(증도)면 방축리 검산마을에 사는 어부 최형근씨(당시 48세)의 그물에 도자기 몇 점과 청자 관음 불상이 걸려들었다. 펄과 굴 껍데기가 더덕더덕 붙어있고 볼품없어 보였지만 집으로 가져가서 씻어보니 불상은 높이 20㎝가량의 청자 관음보살상이었는데, 목포에서 온 고물상 엿장수에게 1,500원을 받고 팔았다.

어부 최형근씨의 동생 최평호씨(무안군 삼향읍 삼향초등학교 교사)께서 1976년 1월 겨울방학 기간에 고향 집을 찾았다가 형이 소장하고 있던 도자기가 고려시대 도자기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목포시청과 신안군청을 찾아갔으나 바닷속에서 무슨 고려청자가 나오냐며 거들떠보지도 않고, 속임수로 보상금을 타내려 한다며 오히려 꾸짖기까지 했다. 4월에는 어부 박창석씨가 또다시 같은 장소에서 청자와 백자를 건져서 신고하자 신안 앞바다에 보물선이 가라앉아 있다는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참고로 신안선에서 발굴된 약 2만여 점의 도자기 중 약 70%인 14,000여 점이 용천(龍泉)청자로 밝혀졌으며, 용천(중국 발음 룽취안)시는 중국 절강성(저장성) 서남부에 위치하는 중국 최대의 청자 생산지로 남송대(南宋代) 말에서 원대(元代) 초에 걸쳐 만들어진 용천청자를 원나라의 적극적인 도자기 수출 정책에 힘입어 외진 산간지역이지만 수상교통수단인 강과 바다를 이용해서 일본으로 싣고 가던 중 침몰하였으며 송나라의 여요청자접시 1점에 301억 원, 여요분청유개합은 60억 원에 거래됐다.

최씨 형제가 가지고 있던 도자기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 감정단이 감정한 결과 7점의 도자기 중에서 하나가 중국 용천요(룽취안요)의 청자대형화병으로 판명돼 약 10~20억 원(복권 당첨 가격)의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나 황당한 우리나라 문화재보호법에 의한 보상금은 100만 원이었고 다시 세금으로 60만 원을 공제하는 바람에 손에 쥔 돈은 고작 40만 원뿐이었다. 최초로 용천청자가 인양된 70년대 후반 세계 미술시장에서는 용천청자 한점에 수만 달러에서 수십만 달러에 거래됐다.

최씨 형제의 소문이 전국으로 일파만파 퍼져나가자 골동품 상인들과 도굴꾼들이 떼 지어 몰려들어 현대판 보물찾기 소동이 시작되었으며, 그룹을 형성한 도굴꾼들은 해중 잠수, 배, 그물 등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해서 수백 점씩 건져다가 목포와 전주 일대에 1점당 200~300만 원씩 받고 마구잡이로 팔아치우던 중 목포 버스터미널 부근에서 가방을 든 40대 남자를 경찰이 수상히 여겨 검문 끝에 그의 창고에서 국보급 보물들이 쏟아져나오자 언론사 취재진이 몰려와 연일 소설을 방불케하는 보도를 했다.

문화재관리국은 지도·증도·임자도 일대 어민들에게서 수백 점 회수, 어로 통제, 감시초소 설치 및 감시선을 배치하고, 그해 10월 11일 “신안해저유물 발굴조사단”을 편성해서 본격적으로 발굴을 시작했다. 발굴 현장은 망망대해에 평균수심 약 20~25m 정도(조석에 의한 약 4m의 수심변화), 해수는 밀물 때 북동쪽으로 흐르다가 썰물 때가 되면 남서쪽으로 바뀌는 매우 위험한 곳으로 조수간만 시 유속은 6노트를 넘나드는 악조건이었고 광선침투도는 평균 20% 이하, 투명도 역시 1m 이하로 혼탁했다.

최신 장비를 갖춘 해군 탐사선을 동원했으나 갯벌이 뒤집혀 수중 시계가 0인데다 유물이 있는 곳을 알아내기는 바다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포기 직전에 목포 경찰에 붙잡힌 도굴범을 데려와서 확인한 결과 삼각점 추정 방식으로 유물 위치 몇 곳을 가리키자 그곳에 부표를 설치하고 연 9,896명의 해군 제5150부대 해난구조대(SSU) 잠수대원들을 동원하여(연 잠수사 9,896명, 잠수시간 3,474시간), 해수온이 15° 이상인 7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 집중적으로 발굴했다.

도굴꾼들은 난 캐러 다니는 척 2~3명씩 짝지어 다니며 감시원을 꼬이려 들거나 감시선을 관리하던 감시원이 지키라고 설치해준 서치라이트를 야밤에 비춰주며 도굴꾼과 한통속이 돼서 도굴하다가 걸리거나 큰 손 장영자씨가 소유한 도자기의 일부, 일본인을 포함한 7개 파 17명에게서도 1천여 점 회수, 우체국장, 신안군 공무원, 유물수사를 담당했던 형사들, 명예감시원의 아들 평범한 임자도 어촌청년 김 모씨는 수산정책자금 300만 원을 받아 잠수기술을 배워와서 건지다 질식하여 목숨을 잃기도 했다.

당시 밀매꾼들은 현물 대신 대개 문공부에서 발행한 컬러판 유물사진첩을 보여 주면서 판로를 찾았는데, 문화재관리국 사범단은 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사범단은 목포시 무안동 대도여관에 본부를 차려놓고 돈 많은 골동품상 행세를 하며 도굴조직에 은밀히 접근하여 잡는 비밀 수사망에 걸려들어 쑥대밭이 되거나, 도굴 사건이 터지면 마을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고, 수중발굴은 도굴꾼과 전쟁의 연속이었다. 최초 도굴사건을 시작으로 10여 년 동안 300여 명 이상의 도굴꾼과 밀매범이 적발됐다.

어족이 풍부했던 황금어장은 1984년 10월 발굴을 마칠 때까지 폐쇄돼 큰 바다로 나갈 수 없어 어장을 잃은 어민들은 빚더미에 눌러앉아 생계까지 위협받게 됐고, 인심은 더 흉흉해졌으며, 엿장수만 봐도 위장한 경찰이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에 피해 다녔다. 보물을 둘러싼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신안선은 귀신 붙은 배라는 소문이 나돌았고 우환이 깃든 물건이라는 말과 함께 경찰들도 재수없는 사건을 맡았다며 투덜댔다. 신안선의 유물을 탐내다 패가망신하거나 아파서 죽고 살림 망한 사람들도 많았다.

목포·신안 사람 중 돈 좀 쓰고 다니고, 신사복 입고 넥타이 매고, 구두 신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 1건 했구나 하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였으니 도굴된 유물의 규모는 정식 발굴된 수치와 맞먹을 것이라는 추정이 무리가 아니며, 신안 앞바다는 끝없이 보물을 토해 내는 요술항아리와도 같았다. 엄청난 유물들과 함께 발견된 신안선(중국 무역선)은 일본 삼나무가 아니고, 중국 남부 양자강(양쯔강) 일대에서 자생하는 넓은 잎 삼나무(광엽삼: 넓은 잎 삼)와 마미송이 주종인것으로 밝혀졌다.

발견 당시의 잔존 선체 길이는 26.4m, 너비 6.6m, 높이 3.4m~3.8m, 8칸의 짐칸, 우현에 설치된 50톤의 초대형 물통, 배의 뼈대인 용골을 갖추고 쌍돛대를 단 적재량 약 260톤 급의 첨저형 단면구조인 중국에서 복선형에 속하는 큰 목선(범선)이었으며, 추정 재원은 길이 약 34m, 너비 약 11m, 높이 약 8m로 침몰 후 바닷속에 가라앉아 뱃머리를 북동쪽으로 향한 채 오른쪽으로 15도 기울어져 배의 우현이 갯벌 속에 묻혀 있었기 때문에 무기물은 물론 유기물도 거의 완벽한 상태로 보존돼 있었다.

신안선의 이동 경로는 1323년 6월 초 수출품을 가득 싣고 중국의 무역항이었던 경원항에서 출발하여 남로를 따라 일본의 규슈(九州) 관문인 후쿠오카(福岡)의 하카타(博多)항으로 항해하던 중이었고, 360여 점의 화물에 붙어 있는 목찰(木札)을 살펴보면 이 배는 하카타항에 입항하여 화물은 동복사(도후구지)·조적암·하코자키궁 등 교토 일대로 운반할 예정이었으며, 쇼우키쿠에리·이치다하야요네·히데시노·키쿠이치·오시센·하치로 등 일본인 이름으로 꼬리표(일본의 관행)에 하주 명도 적혀 있었다.

※ 배의 출발 일자 : 목간발견, 목간의 명문에 至治三年六月一日(지치는 원나라 제5대 영종의 연호/ 음력 추정)이라 적힘
※ 경원(慶遠)항 : 닝보시에 있는 영파(寧波)항, 그당시 지명은 경원항
※ 저울추 : 청동 저울추에 명문(銘文)으로 경원로(慶元路)라 적혀 있었음.
※ 남로 : 양자강(揚子江) 하류에서 주산군도(舟山群島)를 거친 다음, 제주도(濟州道) 남쪽을 지나 일본 규슈(九州)의 고토열도
    (五島列島 : 오도열도)를 거쳐 가는 중·일간의 최단거리 무역항로
※ 당시 뱃사공은 천문과 지리에 통달했으며, 낮에는 태양을, 밤에는 별을 관찰했으며, 흐린날에는 나침반을 보았고, 밧줄과
    갈고리로 해저의 진흙을 채취해 냄새를 맡아 선박이 어디쯤 도달했는지 알 수 있었다고 한다.
※ 명나라 홍무년(서기 1381년)에는 한차례 해금(海禁)을 실행해 불법적으로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하는 자는 중벌에 처했다.

700여 년 동안 멈춰진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1975년 5월 우리나라 전남 신안 앞바다(증도면 방축리 검산마을 만들)에서 최초로 도자기와 관음 불상이 발견되어 1976년 10월부터 1984년 9월까지 만 9년 동안 11차례 총 23,024점이 인양되었으며, 중국 남송대와 원대 도자기(용천청자·정요백자·경덕진백자·추부백자 등) 20,661점, 자단목 1,017본, 주석정과 목칠기, 청동기, 금속제품, 유리제품, 석제품, 먹, 골각제품, 비녀, 정향, 후추, 향신료, 차, 약재, 과실, 씨앗 등 많은 유물이 발견됐다.

또한, 28톤 18㎏(1톤 차량으로 28대분)에 이르는 막대한 양의 구리동전은 옛 중국 화폐박물관을 방불케 해 14세기 신 나라의 천봉(天鳳)·화천(貨泉), 후한의 오수전(五銖錢), 원(元)의 지대통보(至大通寶)에 이르기까지 1300년 동안 만들어진 234가지 800만 개의 동전만 따져도 발굴 당시 화폐가치로 100억 원을 웃돌아 전체 유물 인양비용의 17배 값어치가 있다고 판명하였고, 구리동전 용도는 교토(京都) 동복사(東福寺)로 가져가서, 이를 녹여 불상이나 종각을 만들려 하였던 것으로 추정했다.

2007년에 일본 사쿠라키 신이치 교수는 그 당시 일본이 중국 동전을 수입하여 화폐로도 사용했기 때문에 동전은 화폐의 성격을 가졌거나, 배를 안정시키기 위한 워터(물) 밸러스트(선박의 복원성 유지 및 앞·뒤 경사 조절을 위해서 배의 하부에 싣는 중량물) 기능을 위해서였다고 논문(일본 관점에서)을 통해서 밝힌 바 있으며, 1319년 전후로 교토의 동복사(도후쿠사)와 하코자키궁이 큰 화재를 입었기 때문에 동복사와 하코자키궁의 재건 조영을 위한 자재와 자금조달이 주목적이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사람들의 인골과 중국인의 두개골 그리고 2점의 일본 세토병과 7점의 고려청자도 발견되었는데 고려청자는 중국으로 수출된 후 일본으로 재수출했던 일본 상류층 가마쿠라 사람들이 장엄과 권위를 위해 고려청자를 매우 선호하던 시기였다. 현재 주 유물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하고 있으며, 일부 유물은 국립광주박물관이나 목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도 전시돼 있다. 인양된 선체는 목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1986년 5분의 1로 축소하여 배를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증도에는 서쪽 사적지를 찾아가면 섬 위에 배(트레져아일랜드) 전시관이 있으며, 170점을 복원하여 전시하였다. 방대한 규모의 신안해저유물은 14세기(원대 1323년 6월 초) 도자기를 실증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고려, 동아시아의 원, 일본 3개국의 교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그 당시 몽골과 일본이 국교를 맺고 있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경제적 교류(무역)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로 동양문화사 연구에도 마치 열쇠(타임캡슐)와 같은 자료를 제공하였다.

해양교류사나 학술적 연구가 필요한 해양문화재는 발굴 장소가 무척 중요해서 발굴한 장소나 그 주변에 보전하고 전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가가 나서서 해외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의 반환을 추진하듯 지역성과 장소성이 강한 문화유산은 발굴된 지역에서 전시하고 관리하도록 돌려줘야 한다. 육지에서 발견된 문화재였다면 그 지역에 박물관을 건립해서 보관하고 전시하였을 것이다. 발굴 당시는 증도가 섬이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해 발굴 해역에 박물관을 세우길 바란다.

증도보물섬이라고 부르게 된 계기는 이와 같이 약 700여 년 전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었던 중국 보물선이 발견되었고 보물과 관련된 수많은 사연과 사건이 있었으며,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바닷속으로 뛰어들었지만, 한 몫 챙긴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적지 주변 해역에 조화롭게 흩어져 있는 삼형제섬을 비롯하여 멀리 서해 수평선에 아스라이 걸쳐있는 무인도 사이로 떨어지는 낙조는 이 해역 일대의 청명한 하늘과 어우러지면, 한반도에서 가장 장엄한 해넘이(오메가 일몰)를 볼 수 있는 곳이다.

검생이의 달은 KBS2TV에서 1990년 10월 31일부터 ~ 1990년 11월 29일까지, 매주 수·목요일 밤 21시 50분에 방영을 했던 드라마로, 고기잡는 그물에 도자기가 걸려 올라온 것이 계기가 되어, 평온한 검생이 마을에서 벌어지는 허황된 보물 소동을 통해 인간의 원초적인 탐욕과 애증을 그린다. 실제로 해저유물이 발견되었던 신안군 증도면 방축리 검산마을을 배경으로 촬영하였다.
제작진 극본: 지상학, 연출: 이종한, 출연진: 김성환·하희라·김영애·윤여정·강남길 등(증도 사람도 엑스트라로 출연)

증도펜션민박 

트레져 아일랜드 이용 및 관람 문의 061-271-8988
휴관일 : 수요일(간혹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은 평일이어도 휴관)
입장료 : 1,000원(2012년 1월 기준), 식사, 마시는 차 등 이용시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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