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면유래 증동리유래 방축리유래 대초리유래 우전리유래 병풍리유래
글번호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39   증북(曾北)마을 2011/8/1 3026
증북마을은 면소재지 북쪽인 비교적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 하여 예전에는 윗마을(방언: 웃모실, 웃마실)이라 부르다가, 1902년(고종40, 광무6)에 지도면장이 증도면 소재지의 북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의미로, 증북(굽은 개가 있어 곡포라 불리던 구분포마을 포함)이라 개칭하였으며, 마을의 높은 곳에 홍현재(虹見齋)라는 서당이 있었고, 덕산(죽산) 아래에는 서씨 집안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며 제를 모셔왔던 영모재(永慕齋)가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증도대교에서 진입하는 면소재지 초입에 있는 증북마을은 섬 교회의 어머니라 불리는 여성순교자 문준경전도사께서 증도 최초로 교회를 세워 순교 시까지 사역하신 순교자교회인 증동리교회가 마을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새벽이면 문준경전도사께서 그 당시 신자들을 불러모았던 종소리를 지금도 들어볼 수 있으며, 집집마다 예수를 믿는 마을이며 사역하신 발자취를 따라서 성지순례차 증동리교회를 다녀가는 기독인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마을이기도 합니다.

특히 한반도 모습(울릉도, 독도, 제주도 모습 등)을 카메라에 담기 위한 사진작가들, 증도 최고봉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오르는 도보여행 등산객들, 문준경전도사께서 늘 기도드렸던 기도산을 찾는 기독인들, 마을 사람들의 건강 산책로로 날이 밝으면 ‘야호’ 소리가 온 마을에 우렁차게 울려 퍼져 마을 사람을 잠에서 깨워 놓는 상정봉 초입은 일제강점기 건물이 있었던 증도출장소 자리(농업기술센터)와 문준경전도사께서 경방단에 강제로 빼앗겨(일제강점기) 소유권이 없다가 2017년도에 매입한 최초의 교회터에 증·개축한 옛교회 사이인 증동리교회 옆길을 따라서 완경사 위쪽으로 오르면 마을이 내려다보입니다.

증북마을은 1688년(숙종14)에 이천서씨가 이주해와 형성된 마을입니다.


자료 및 사진 제공
전남 신안군 소속 문화관광해설가 이종화 010-3818-8882
(증도 여행관련 문의시 감사하는 마음으로 답변드리겠습니다.)

증도펜션민박 홈페이지 
http://j-minbak.com






옛날부터 물이 적은 섬이라 하여 시리(시루)섬 또는 앞시리 뒤에 있다 하여 뒷시리라 부르다가 우전도와 앞시리가 제방을 쌓아 섬끼리 이어지면서 전증도(前甑島)라 부르게 되었고, 뒷시리는 후증도(後甑島)라 부르게 되었으며, 전증도와 후증...
조산(造山) 지명에 대해서   증도면 소재지에 조산이라는 산과 건네조산이라는 산이 있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위치의 증동 마을 동쪽에 위치한 산이라서 그러한 뜻이 담긴 한자어가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
증북마을은 면소재지 북쪽인 비교적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 하여 예전에는 윗마을(방언: 웃모실, 웃마실)이라 부르다가, 1902년(고종40, 광무6)에 지도면장이 증도면 소재지의 북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의미로, 증북(굽은 개가...
증서마을은 오래된 고(古)마을이라 하여 곤멀(곰머실)이라 부르다가 이후 마을이 잔등 너머에 위치한다 하여 넘멀이라 불렀으며 1902년(고종39, 광무6)에 지도면장이 증도면 소재지의 서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의미로 증서와 증남을 합해...
예전에는 누룩을 포개 놓은 모양이라 하여 누룩섬이라 불려져 오던 곳으로, 바로 옆에 소누룩도가 있어, 누룩섬이라는 지명에서 유래하여 누룩곡자를 써서 곡도라 불리었고, 1902년(고종39, 광무6)에 지도면장이 섬이 활같이 구부러졌다 ...
옛날에는 착한 효자가 움막을 치고 살았던 곳이라 하여 효막동(효목동)이라 부르다가 1902년(고종39, 광무6) 지도면장이 들이 넓고 바위가 많은 곳(나박바우, 공독바우 등)이라는 의미로 광암(廣岩)이라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
 
  • 내가 찜한
    목록이
    없습니다.
  • 오늘 본
    목록이
    없습니다.

대표: 이주청 / 증도펜션민박협의회
주소: 전남 신안군 증도면 보물섬길 114 전화(총무): 010-3818-88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