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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번호 | 제 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 |
2057 | 증동(曾東)마을 | 2015/7/24 | 3394 |
옛날부터 물이 적은 섬이라 하여 시리(시루)섬 또는 앞시리 뒤에 있다 하여 뒷시리라 부르다가 우전도와 앞시리가 제방을 쌓아 섬끼리 이어지면서 전증도(前甑島)라 부르게 되었고, 뒷시리는 후증도(後甑島)라 부르게 되었으며, 전증도와 후증도가 더해져 1902년(고종40, 광무6)에 지도면장이 증도(曾島)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모여 사는 큰 마을인 증도면 소재지의 동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증동(曾東)이라 개칭한 이후 지금까지 증동이라 불리고 있는 마을로 증도면 5개 법정리의 하나인 증동리는 증동, 증북(구분포), 증서, 곡도, 광암(갈룡구지, 새암건네 등)마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면소재지의 동쪽 마을인 증동마을은 증도인의 지주가 되고 있는 산 상정봉(上正峯)으로부터 이어지는 산주렁을 따라 동쪽 조산(造山) 아래에 위치한 마을로 병자호란 직후 전염병(역병)이 와서 많은 사람이 죽게 되자 배가 드나들던 마을 어귀에 액운을 막기 위한 방액석을 설치(목너메 비석거리라 부름)하였으며, 마을 앞에는 개인소유 염전이 많았으나 지금은 모두 농경지가 되었고, 증도중학교와 인접해 있으며, 특히 한국 기독교총연합회장(전)을 지내신 이만신목사의 고향 마을입니다. 증동마을은 1628년(인조6)에 전주이씨 이태욱이 지도 오산에서 살다가 가정이 어려워 형제들이 각각 흩어지게 되자 이 마을로 들어와 원주이씨의 딸을 맞아 정착하였으며 이후 1688년(숙종14)에는 영일정씨가 1708년(숙종34)에는 김해김씨가 이주해와 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 자료 및 사진 제공 전남 신안군 소속 문화관광해설가 이종화 010-3818-8882 (증도 여행관련 문의시 감사하는 마음으로 답변드리겠습니다.) 증도펜션민박 홈페이지 http://j-minbak.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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